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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국민보(19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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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덕고려학우회의 재미한인유학생과의 연대 제안]
(192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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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한국어
면수 :
1
해설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의 재미한인유학생과의 연대 제안
일제강점기 유럽에 거류하는 한인들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프랑스와 독일에서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독일의 한인유학생들은 식사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캘리포니아 대학교 LA 캠퍼스(UCLA)에 소장된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국민보』의 1921.12.17. 「삼가 말씀드립니다」기사에서 그 흔적이 나타난다.‘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는 1921년 1월 1일 독일 베를린에서 김갑수‧이의경‧윤건중(1990 애족장) 등의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단체이다.이들은 외교‧선전을 통한 독립운동에 주력하면서도 한인 구제활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원을 다방면으로 추진했다.잡지 『헤바(Heba)』를 발행하여 재독한인의 동정과 시국 상황을 알렸으며, 1921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개조 문제와 관련하여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 입장을 대내외에 발표하였다.또한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한인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자 재독한인대회를 열어 일본을 규탄하고, 선전물을 제작하여 유럽과 미주, 상해에 배포하였다.그러나 재독한인유학생들의 활발한 독립운동 이면에는 다른 독립운동단체와의 교류가 거리상 쉽지 않고, 인력과 재정이 부족하다는 어려움이 존재하였다.일제는 금전적 보상을 미끼로 한인유학생들의 독립의지를 시험하기도 했다.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유덕고려학우회는 재미한인유학생과의 연대에 주목하였다.기사에 따르면 그들은 재미한인유학생들의 단체인 한인학생회에 자신들을 소개하고 소통과 연대를 제안했다.재미한인유학생들도 이에 화답하여 모금 운동에 착수, 유덕고려학우회에 동정금을 전달했다.이러한 교류가 지속된 결과 1927년에 유덕고려학생회가 벨기에 피압박민족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미주 최대 한인 단체인 대한인국민회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일제강점기 당시 각국에 산재한 한인 유학생들은 공간적 단절이 가져온 소통의 어려움 속에서도 조국 독립을 위한 의지를 잃지 않았다.오히려 학생이라는 공동의 정체성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매개로 대륙과 해양을 넘는 상호 교류와 지원을 이루어냈다.그들의 지속적인 외교‧선전독립운동을 통해 구미지역에서 한국 독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