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10월 서울에서 종방 (鐘紡) 경성제사공장 (京城製絲工場) 파업과 관련하여 체포된 바 있으며, 1935년 11월 서울에서 러시아 공산대학 출신인 김승훈 (金承塤) 이 이재유 (李載裕) ·권우성 (權又成) 등과 의논하여 사유재산 제도의 부인과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결성한 경성지방좌익노동조합 (京城地方左翼勞動組合) 조직준비회 (組織準備會) 에 가담하여 노동자 동지 확보와 공산주의 사상 선전에 주력하다가 체포되어 약 (約) 1년 1월의 옥고 (獄苦) 를 치른 후 예심 (豫審) 에서 면소 (免訴) 처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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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30년대 초 서울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효정은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 나가 만세를 부르고 종로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으며, 3학년 때는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동맹을 주도해 무기정학을 당했다.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1933년 9월 21일, 종연방직[鐘紡] 경성제사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나자, 이효정은 이재유(李載裕)의 지도를 받아 여직공을 선동하여 총파업을 지도하였다. 노동쟁의의 확대를 꾀해 공장 내 조직의 확대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별 적색노동조합을 결성한다는 계획 하에 파업을 선동하였던 것이다.
종방 파업 이후 1933년 10월 17일 청량리에서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5년 11월, 이효정은 서울에서 이재유·권우성(權又成) 등이 주도 조직한 ‘경성지방좌익노동조합 조직준비회’에 가담하여 동지 규합과 항일의식 고취에 주력하다가 경찰에 검거되어 약 13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06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中央日報(1935. 11. 8)
- 勞動爭議 背後煽動 其他에 關한 件, 京東警高秘 第3248號1933. 10. 26, 思想에 關한 情報 6(국사편찬위원회)
- 被疑者 素行調書(東大門警察署:1935. 12. 25)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별집7권 78면
- 朝鮮日報(1936. 12. 29)
- 東亞日報(1933. 10. 19, 10. 21, 1935. 12. 28)
- 朝鮮共産黨再建同盟事件 發覺에 關한 件, 京西高秘 第8613號의31934. 2. 7, 思想에 關한 情報 7(국사편찬위원회)
- 決定書(京城地方法院:1936. 5. 13, 7. 14,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