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1943년 5월 일본 천기시(川岐市)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취업중인 한국인 노무자들의 민족차별 반대시위에 참여하여 이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피신하여 귀국 후인 1945년 5월 서울 관수동(觀水洞)의 유만수(柳萬秀)의 집에서 유만수·우동학(禹東學) 등과 함께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국내에서의 대일투쟁을 결의하였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1945년 7월 24일 서울 부민관(府民 )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라는 친일어용대회가 열리며 이를 주최하는 자가 친일민족 반역자인 박춘금(朴春琴)이라는 소식을듣고, 부민관에서의 거사를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7월 24일, 동지들과 함께 대회장에 푹탄 두 개를 투척하여 그곳을 수라장으로 변하게 하였다.
이후 조동필(趙東泌)·유태현(柳台鉉) 등과 함께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노림리(京畿道華城郡梅松面老林里)의 야학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13권 867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5권 33∼3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7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805·806·80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4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