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권옥연은 경북 봉화(奉化) 출신으로 1896년 1월 을미의병기 안동의병에서 권세연의진(權世淵義陣)의 초모장(招募將)으로 활동하였고, 1896년 1월에는 김도화의진(金道和義陣)의 부장(副將)으로 활동하였다.
권옥연의 자는 경덕(景德), 호는 소허재(素虛齋), 본관은 안동이다.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54세인 1892년(고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 시독관(試讀官) 등을 지냈다.
1896년 1월 21일 안동의진의 지휘부는 창의대장 권세연(權世淵),부장 곽종석(郭鍾錫, 미취임),중군장 유완(柳碗),선봉장 김옥서(金玉瑞),우익장 권용현(權用賢),좌익장 이운호(李運鎬),좌부장 이의호(李宜鎬) 등을 주축으로 편성되었고, 권옥연은 초모장에 임명되었다. 이 때 주목되는 것은 안동의진 초모장 권옥연과 순흥의진 홍종선(洪鍾善) 휘하의 부약장 겸 초모장 신태운(申泰雲)이 영월에 주둔하고 있던 호좌의진(湖左義陣)의 소모장 서상열(徐相烈)을 방문하여 서상열의 영남진출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1896년 3월 12일 권세연은 전투에서 패한 책임을 지고 의병장을 사퇴하였다. 이튿날 김도화가 의병장에 취임하였고, 지휘부를 재편성하였다. 그러나 태봉전투(胎峰戰鬪) 패배 이후 안동부가 일본군의 방화로 불타고 말았다. 4월 초 안동의진은 재기를 위한 진용의 정비를 서둘렀다. 흥해의 최세윤(崔世允)을 좌익장, 영양의병장 김도현(金道鉉)을 부장, 호좌의진의 서상열(徐相烈)을 군사, 이긍연(李兢淵)을 종사관, 그리고 권옥연은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같이 권옥연은 안동의병이 일어나 해산할 때까지 초모장, 부장 등의 주요 직책을 담당하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關東倡義錄(국사편찬위원회) 제1권 18면
- 安東義所爬錄
- 韓末義兵日記(국가보훈처, 2003) 160, 1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