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북 봉화군(奉化郡)에서 일본 제국주의 침탈에 반대하는 청년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권차응은 1924년 3월 대성학원(大成學院) 을과(乙科)를 수업하고, 1927년에 봉화청년회(奉化靑年會)와 봉화프로운동자동맹에 가입하였다. 1928년 3월 10일 봉화청년동맹 제1회 정기대회에서 서무재정부장을 맡았으며, 5월 10일 봉화청년동맹 제1회 확대집행위원회에서 문화교육부장에 선임되었다. 1928년 8월경 신간회(新幹會) 봉화지회 상무간사, 10월경 봉화청년동맹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5월 하순, 황윤경(黃潤慶)·권우섭(權宇燮)·김창희(金昶熙) 등과 함께, 봉화군 내성면 유곡리(酉谷里) 제궁곡(濟宮谷)에 모여 황윤경의 주창으로 봉화군 내에 사상운동을 지도하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 침탈에서 벗어나고자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하여 대중 계몽운동에 역점을 두었다. 우선 농촌 청년을 규합하여 적색농민조합을 결성하고, 부서로는 농민부·반제부·청년부·연락부로 나누고, 청년부에 별도의 반제국동맹을 두었다. 권차응은 청년부 책임자로서 청년회 조직 및 지도를 맡았다. 1932년 7월 19일, 영주·봉화 적색농민조합(赤色農民組合)이 경찰에 발각되면서 관련 인사 약 80여 명이 체포되었다. 권차응을 포함하여 황윤경·권우섭·김창희 등 12명은 근 10개월 동안 예심 판사의 취조를 받고 1933년 4월 1일 공판에 회부되었다. 권차응은 193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33. 12. 22)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37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名籍表(大邱刑務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