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충남 공주의 사립 영명여학교(永明女學校) 교사로서, 3월 24일 오후 9시경 영명학교에서 이 학교 교사인 김관회(金寬會), 현석칠(玄錫七) 목사 등과 만나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만세운동에 호응하여 공주에서도 4월 1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3월 30일 영명학교 학생들에게 만세시위 참가를 권유하는 한편, 31일에는 이 학교 기숙사에서 영명학교 학생인 윤봉균(尹鳳均)이 서울에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에 기초하여 작성한 독립사상 고취 문서 약 1,000여 매를 등사하였다.
주도자 중 한 사람인 김수철(金洙喆)은 이규남(李圭南)에게 당일 시위 현장에서 사용할 태극기 제작을 의뢰하였다. 이에 이규남은 태극기 4매를 제작하여, 이 중 3매는 김수철에게 주고, 1매는 이규상에게 전해주었다. 김수철은 1매는 자신이 지니고, 나머지는 학생 노명우(盧明愚)와 윤봉균에게 주어 4월 1일 오후 2시경 공주 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사용하게 하였다. 한편 이규상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태극기를 김현경(金賢敬)에게 주어 시위 현장에서 사용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5개월여의 옥고를 치르던 중 1919년 8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公州地方法院, 1919. 8. 29)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1137∼1140면
- 豫審終結決定書(公州地方法院, 1919. 7. 28)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107∼10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255∼25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