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4월 1일 공주(公州)시장에서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들이 중심되어 전개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고, 이른바 한성정부(漢城政府) 수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기독교 목사로서 1919년 3월 24일 오후 9시경, 공주 영명학교에서 이 학교 교사인 김관회(金寬會) 등과 만나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세시위에 호응하여 공주에서도 4월 1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4월 1일 오후 2시경, 영명학교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을 하였다. 그는 이 운동의 주도자로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8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한성정부 수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그는 국민대회 간부가 되어 한남수(韓南洙)·이규갑(李奎甲)·이동욱(李東郁) 등과 협의하여『국민대회취지서』, 『선포문』, 『약법』, 『결의문』등의 원고를 만들고, 이를 민강(閔강)과 함께 서소문동 이민홍(李敏洪)의 집에서 목판을 이용하여 6,000여 매를 인쇄하였다. 또한 그는 동월 19일경 통의동(通義洞) 김회수(金晦秀)의 방에서 안상덕(安商德)·김유인(金裕寅)·민강 등과 회합하였는데, 그는 기독교 대표로서 이 운동에 소요되는 자금 600원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그는 이튿날 비밀누설을 우려하여 약종상을 경영하여 금전 출납과 왕래자가 빈번한 천정(泉町)에 거주하는 민강에게 500원을 전달하여 지도부에 제공하게 함으로써 국민대회와 한성정부 수립을 적극 지원하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소위 출판법,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의 공판에 회부되어, 1920년 여름까지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79∼80·1137∼1140면
- 現代史資料 제25권(姜德相 編, 1971) 344면
- 기독신보(1920. 3. 17)
- 현석칠 목사의 생애와 사상(이덕주, 2003) 21∼25면
- 한국 사회주의 세력의 형성(李賢周, 2003) 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