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본관은 선산(善山)으로 1891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 진사가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재종제 김교환(金敎環)과 함께 죽봉(竹峰) 김태원(金泰元) 의진에 참여하였다. 김병규는 김태원 의병의 참모가 되어 기삼연(奇參衍)부대와 연합하여 항쟁하는 등 전술전략을 수립하는데 공을 세웠다. 김병규는 김태원의병장과 함께 월현(月峴)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붙잡혀 혹형(酷刑)을 받았다. 그는 1919년 광무황제의 승하소식을 접하고 마을 산에 단(壇)을 쌓고 북향망곡(北向望哭)하였으며 3·1운동이 일어나자 [문대한독립만세(聞大韓獨立萬歲)]라는 시를 지어 독립을 기원했다고 한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湖南節義錄(호남향교, 1964)
- 晩惺齋遺稿(1952)
- 咸平郡誌(함평군, 1969) 31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