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북 길주(吉州) 사람이다.
중국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 등의 무정부주의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을 타파하고 상호부조에 의한 이상사회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무정부주의에 심취하여 친형인 심용해(沈龍海)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 타도에 나섰다.
그리하여 1931년 9월경에 정화암(鄭華岩)·유자명(柳子明)·유기석(柳基石)·원심창(元心昌)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반일의열투쟁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조직하였다.
1920년대 상해에서는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무정부주의로 전향하게 되었는데 1928년 이들이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을 결성하여 『탈환』이라는 기관지를 간행하며 활동하였다.
동 연맹은 1931년 11월 별동조직으로 상해에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을 결성하여 일제 고관 암살, 일제 관공서 파괴, 부일배 처단 등 구체적인 항일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1933년 흑색공포단원인 이강훈(李康勳), 백정기(白貞基) 등은 주중일본공사 유길명(有吉明)의 암살을 기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외에도 흑색공포단에서는 일본영사관의 밀정인 이종홍(李鍾洪), 상해 조선인거류민회의 고문으로 친일파인 이용로(李容魯)를 사살 응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동지들이 체포되고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자 그는 정화암 등과 함께 중국 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로 이동하여 평민중학교(平民中學校)의 교사로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그후 1945년 안휘성(安徽省) 무림(茂林)에 본부를 둔 한족동맹(韓族同盟)의 비서로 선임되어 유기석 등과 함께 적지구(敵地區)에서 한인 청년들의 초모공작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이 조국 어디로 갈 것인가(鄭華岩, 1982) 187·188面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22輯 574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2卷 628面
- 南華韓人靑年聯盟의 결성과 그 활동(朴 , 朴永錫敎授 華甲紀念 韓民族獨立運動史 論叢) 958·96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