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31년 10월 충남 부여군(扶餘郡) 구룡면(九龍面)에서 이호철(李戶喆) 등과 함께 비밀연구모임을 조직하고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강일구는 부여공립보통학교(扶餘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만주와 일본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1931년 8월 귀향하였다. 이후 최재봉(崔在鳳)이 경영하는 조선일보(朝鮮日報) 부여지국에서 일하면서 동리의 야학교 교사를 겸임하였다. 이 무렵 일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깊게 인식하고 항일투쟁의 수단으로 사회과학 서적을 구독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접근하였다. 강일구는 1931년 10월 5일 구룡면 금사리(錦寺里) 산중에서 동지들과 함께 공산주의연구협의회(共産主義硏究協議會)를 결성하고 교양부를 담당하였다. 이후 1933년 3월 23일 보다 적극적인 운동실천을 위해 동회를 해체하고 공산주의자협의회(共産主義者協議會)를 결성하고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각 부락에 야학을 개설하여 연극, 강연 등을 개최해서 농민의 계몽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동년 4월 중순경에는 칠모회(七모會)란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야학운영과 사회주의 사상 보급에도 힘썼다. 동년 5월 부여군 장암면(場岩面)의 야학담당자로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강일구는 1935년 11월 2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共産主義硏究協議會, 共産主義者協議會, 農民俱樂部 및 七會모사건(1936. 3) 思想彙報 제6호 216~217, 219~220면
- 일제하 부여지역 동족마을의 농민운동연구(장세옥, 2002) 湖西史學 제33집 82면
- 일제시기 충남 부여·논산군의 유지집단과 혁신청년집단(지수걸, 2005) 韓國文化 제36집 216면
- 朝鮮中央日報(1935. 10. 16·11. 3)
- 東亞日報(1933. 9. 29·12. 9)
- 刑事事件簿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朝鮮日報(1935.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