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김송죽은 1939년 11월 중국 중경(重慶)에서 조직된 항일군사 단체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 대원으로 참여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중국 서안(西安)으로 이동한 후 중국 제34집단군 후종난(胡宗南) 부대와 연계했다. 1940년 5월부터 후종난 부대의 지원하에 일본군 점령지역에 들어가 한인 청년들을 모집했다.
그 밖에 중요한 임무로 중국군 지원 및 중국 군민과의 유대 강화가 목적인 연극공연을 수행했다. 서안에서 중국의 항전 장병을 위문하기 위해 1940년 5월 20일부터 10일간 실험극장을 빌려 연극을 공연했다. 연극 ‘국경의 밤’‧‘한국의 한 용사’‧‘아리랑’등은 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수익금은 서안부녀회(西安婦女會)가 주관하는 모금 운동에 전달했다.
김송죽은 ‘아리랑’공연에서 배우로서 ‘목동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공연 수익금 4,000여 원은 중국 항전 장병들에게 기부했다. 같은 해 6월 하순에는 간부훈련단의 청년노동영(靑年勞動營)에서 한중청년연환회(韓中靑年聯歡會)를 공연했다.
1940년 말에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병력이 1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혁명역량을 집중시키기 위해 광복군에 합류했다. 1941년 1월 1일 서안 시내에 있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본부에서 편입식이 거행되었고, 부대원들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제되었다.
광복군 제5지대의 간부는 지대장 나월환(羅月煥), 부지대장 김동수(金東洙), 정훈조장 이하유(李何有), 훈련조장 박기성(朴基成), 공작조장 이재현(李在鉉) 등이었다. 김송죽도 광복군 제5지대 대원으로서 일본군 점령지역에서 초모‧선전‧첩보‧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청년』 제1기(1940. 7. 15)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6) 제9권 59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6) 제15권 33∼35, 37∼38면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1973) 제3권 125, 1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