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1931년 1월 이호철(李戶喆)‧노명우(盧明愚)‧유기섭(柳基燮) 등이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을 중심으로 금강문인회(錦江文人會)라는 합법단체를 표면에 내세우며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들은 같은 해 10월 금강문인회를 바탕으로 비밀결사 공산주의연구협의회(共産主義硏究協議會)를 조직했다.
이후 비밀결사 명칭을 공산주의자협의회(共産主義者協議會)로 개칭하고 부여군 홍산면(鴻山面)‧규암면(窺岩面) 등의 각 마을에 농민야학과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1931년부터 부여군 남면(南面)‧규암면(窺岩面)‧장암면(場岩面)‧부여면(扶餘面)의 각 부락에도 야학을 개설했다. 이들은 청소년들에게 한글‧산술 등의 초등교육 과정과 항일의식을 교육했다.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長蝦里) 출신인 강주구는 장하리에 개설된 야학에 통학하며 교사인 강성구(姜星求)의 영향을 받아 항일의식과 사회주의 사상을 학습했다. 야학을 졸업한 후 야학 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강병욱(姜秉郁)‧강병환(姜秉煥) 등 야학교사 동료들과 칠모회(七侔會)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이들은 교과목 등에 관해 협의하며 효과적인 교육방안을 연구하였다.
더불어 토론회‧창가 등을 통해 야학을 수강하는 청소년들에게 항일의식과 신사상을 교육하였다. 1933년 9월 이러한 조직이 일제에 노출되어 그를 비롯한 수십 명의 관련자들이 체포되었다. 1935년 11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사상휘보(思想彙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6. 3.) 제6호 215~217, 220~221면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3. 12. 9)
- 조선일보(朝鮮日報)(1933. 12. 8, 1935. 6. 11, 10. 20)
- 매일신보(每日申報)(1933.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