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17세 때 중국으로 건너가려 했으나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이후 중국어를 학습하여 1938년 11월 산시성(山西省) 영제(永濟)에 주둔한 일본 헌병대의 통역이 되었다.
1939년 통역의 직책을 이용하여 포로로 잡힌 중국인 유격대장이 석방될 수 있도록 도왔다. 중국 유격대와 연계하여 대규모 폭동을 일으킬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1940년 1월 4일 사형이 확정된 5명의 중국인 유격대원을 탈출시키고 자신도 일본군을 탈출하였다. 이 때 일본군 군용지도와 명령문 등의 기밀 문건을 소지하고 중국인 유격대에 합류하였다. 중국 유격대에 소속되자 추격해 온 일본군을 기습 공격하여 패퇴시켰다.
이후 시안의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합류하였다. 박동운이 시안에 도착하여 처음 본 태극기를 어루만지며 대성통곡하자 이를 본 동포들도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중국 유격대원을 탈출시키고 일본군을 탈출하여 항일전선에 합류한 박동운의 활동은 당시 여러 중국 신문과 『한민(韓民)』, 『한국청년』 등 독립운동 단체의 기관지에 실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즉 한국과 중국의 항일 연대와 일본군 소속 한인 청년들의 항일전선 참여의 상징적인 사례로서 주목받았다. 그의 일본군 탈출은 이후 일본군 소속 한인 병사들이 탈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서는 박동운의 사례를 ‘한국의 한 용사’라는 연극으로 제작하여 여러 차례 공연하였다. 사실에 입각한 내용에 박동운이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연기함으로써 사실감을 더하였다. 이 공연은 중국인들에게도 큰 감명을 주어 한중연대와 항일의식 고취에 기여하였다.
이후 1941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5지대로 개편됨에 따라 제5지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 특과총대(特科總隊) 학원대(일명 韓靑班)에 마련된 한인 청년 군사훈련과정을 수료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40. 8. 1, 8. 8)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1971) 제1권 661~664면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1972) 제2권 109, 383, 384면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1973) 제3권 113~116, 125~131, 134~140, 236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6) 제10권 5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6) 제15권 16, 18~23, 31~33, 39~48, 59, 103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10) 별책 제4권 24, 37~4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4권 94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제6권 168, 231, 2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