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고 운전수로 생활하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었다. 이후 한국광복군은 군세(軍勢) 확장을 위해 중국 각지에서 한인 청년들의 징모(徵募) 활동에 주력하였다. 징모 제1분처는 이준식(李俊植)을 책임자로 산시성(山西省) 대동(大同), 징모 제2분처는 공진원(公震遠)을 책임자로 쑤이위안성(綏遠省) 포두(包頭)를 중심으로 군사 초모(招募) 활동을 벌였다.
김문호(金文鎬)가 주임위원인 징모 제3분처는 1941년 3월에 발족하였다. 징모 제3분처는 중국 국민당군 제3전구(戰區) 지역인 장시성(江西省) 상요(上饒)를 근거지로 초모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일본군 포로 심문을 통한 정보 수집, 항일 선전운동 등을 담당하는 한편 한국 청년들을 초모하여 광복군에 편입시켰다.
이 때 최일영은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에 합류하여 조국 광복운동에 참여했다. 일본군의 공격으로 1942년 10월 징모 제3분처가 푸젠성(福建省) 남평(南平)으로 후퇴하여 한국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 제3분대로 개편됨에 따라 이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43년에는 상하이(上海)에 파견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5년 3월 김문호 등과 각지에 파견 공작 중인 대원들을 순방 격려하고, 중국 제1유격 정진군(挺進軍), 미 공군 파견대 등과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1973) 제3권 223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6) 제11권 53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제6권 4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