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윤태선은 1919년 9월 서울에서 강대호(姜大浩), 송범조(宋範朝) 등과 임시정부 연통제(聯通制) 조직인 13도(道) 총감부(總監部) 총무로 활동하였다. 연통제는 조선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가 국내 각 도, 각 군, 각 면에 항일만세운동, 독립자금모집 등을 전개하기 위해 설치한 비밀 행정 조직이었다.
윤태선은 동년 9월 상순경 경성부 취운정(翠雲亭)에서 동지들과 만나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동지 규합이 필요함으로 13도 총감부를 서울에 설치하고 또 각도에 지부를 설치할 것을 합의하고 역할분담을 하였다. 그 결과 윤태선은 총무 및 함경북도 지부 설치 담당자가 되었다. 1919년 10월 하순경 지부 설치를 위해 경성(鏡城)을 방문하여 정재호(鄭在鎬)의 집에서 이상호(李相鎬), 전재일(全在一) 등을 만나 협의하였다. 이 모임에서 함경북도 지부를 종성(鍾城)에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지부장에 전재일 등을 임명하였다. 이때 윤태선은 소지한 독립운동 유고문(諭告文), 대한임시정부 13도 총감부 명의의 찬의사(贊義士) 임명사령서, 동 명의의 애국금수금위원 사령서 등을 배부하였다.
동년 12월 박관훈(朴寬勳)의 집에서 이상호, 전재일 등과 만나 1920년 2월경 임시의정원에 국내 각도 대의원 3명을 출석시키기로 하여, 함경북도 대의원으로 윤태선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12월 중순 이후 함경북도의 일본 경찰에 의해 조직이 발각되어 47명의 동지들이 차례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윤태선도 체포되었다.
1920년 11월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0. 11. 29)
- 독립신문(1921. 1. 1)
- 한국독립사(김승학, 1970) 하권 205면
- 東亞日報(1920. 8. 22.8. 23, 8. 27, 8. 28, 8. 29, 8. 30, 8. 31, 1922. 9. 6)
- 신한민보(1920. 9. 23)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5)(육군성, 1920. 1. 10)
- 朝鮮獨立運動-民族主義運動編判(김정명, 1967) 제1권 분책, 254~259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제5권 506~554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956) 186~21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84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986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5권 506~554면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3)(육군성, 1921.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