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26년 강릉(江陵)의 수선강습소(修繕講習所)를 졸업한 뒤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운동과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이후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을 재건하기 위한 강릉지역 조직체인 강릉공산청년동맹조직위원회(江陵共産靑年同盟組織委員會)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1월 강릉공산청년동맹조직위원회는 신탄(薪炭)판매에 대한 면사무소의 수수료 징수를 문제삼아 농민 300여 명과 함께 수수료 징수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강덕선(姜德善) 등과 함께 조직을 강릉적색농민조합결성준비위원회(江陵赤色農民組合結成準備委員會)로 개편하였다. 이 단체는 지역 청년들을 규합하여 농촌야학을 실시하고, 농민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농민조합의 결성 및 단체의 확대강화에 노력하였다. 일제 식민통치의 모순을 비판하며 활동하던 그는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2년(미결통산 150일)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共産主義運動史(李起夏, 1976) 1249∼1259면
- 韓民族獨立運動史料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별집1권 24면
- 朝鮮中央日報(1935. 8. 24 號外)
- 思想彙報(朝鮮總督府 高等法院檢事局思想部, 1935) 제4호 21∼32면
- 朝鮮日報(1935. 8. 24 號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