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30년대 중반 서울에서 안승락(安勝樂)이 경영하는 중앙의원(中央醫院)에서 의사 조수로 근무했다. 안승락은 1930년대 전반기에 서울 동대문지역 등을 중심으로 ‘혁명적노도조합 공장그룹’을 결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승락은 박인선(朴仁善) 등과 함께 여기에 참여했으며, 동지들 간의 연락 및 치료 업무를 맡았다. 다수의 동지들이 1935년 9월 27일 이후 검거될 때 그도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권태규는 1936년 3월 김희성(金熙星)에게 박인선 등을 소개했다. 김희성은 1930년대 전반기에 ‘권영태(權榮台) 그룹’에서 혁명적 노동조합운동과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이병희(李丙禧) 등과 함께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의 후계운동(後繼運動)을 계속하였으며, 조직 내 연락원으로 활동했다. 12월 다수의 동지들이 검거될 때 종로경찰서(鐘路警察署)에 체포되었다. 1937년 5월 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검찰로 송치되었다. 체포된 지 1년 반이나 지나 예심(豫審)이 종결되었다. 1938년 5월 21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예심면소(豫審免訴) 처분을 받았다. 5월 23일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5. 10. 4, 11. 1, 11. 6, 11. 8)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86) 제1집, 2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