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25년 대성학원(大成學院)을 졸업했다. 1926년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영주(榮州)와 봉화 지역을 함께 의미하는 영봉프로운동자동맹에 가입하고, 봉화청년회 집행위원을 지냈다. 1927년 1월 만주로 가서 농업에 종사했다. 1930년 봄 무렵 중국 길림성 하성현에서 재만선인농민동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7월경 봉화로 돌아왔다. 1931년 9월 경상북도 봉화군과 영주군에서 적색농민조합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7일 “노농러시아혁명기념일이며 봉화조림품평회에 사람이 많이 모인 날”이라고 해서 ‘예비검속’을 당하였다. 이때 봉화청년회 활동으로 체포되었다.
1932년 2월경 적색농민조합과 반제농민 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같은 해 5월 황윤경(黃潤慶) 등과 신사회(新社會) 건설과 민족해방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책임비서를 맡았다. 같은 해 7월 말 적색농민조합운동과 청년부에는 반제동맹 등의 동지 규합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3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1935년 3월 26일 아침 대구형무소에서 만기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33. 12. 22)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11. 10, 1932. 8. 2, 9. 20, 10. 2)
- 조선일보(朝鮮日報)(1933. 5. 3)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