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1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講習科) 3학년 재학 중 교사 현준혁(玄俊赫)에게서 공산주의 연구 단체를 조직할 것을 권유받았다. 10월 하순경 현준혁의 지도 아래 같은 학교 학생 윤중렬, 홍왕식 등과 사회과학연구그룹을 조직했다. 동참자가 증가하자 최이칠 등이 책임자가 돼 2개 조로 나누어 활동했다. 이들은 1932년 1월까지 대구역 등지에서 공산주의 연구를 하는 동시에 동지 포섭에 힘썼다.
1935년 1월 중순경부터 서울에서 권우성(權又成)과 함께 공산주의 운동의 정세와 노동조합 조직 이론을 토론했다. 또한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해 마산(馬山)으로 가서 박종대(朴鍾大), 강정윤(姜正允) 등을 지도할 것을 협의했다. 이에 2월 하순부터 3월까지 마산에서 박종대, 강정윤에게 일본제국주의 아래 자본주의 사회제도의 모순과 노동자의 궁핍한 상태 등을 설명하며 지도했다 동시에 동지 포섭을 위해 협력할 것을 협의했다. 이후 6월경 대구로 돌아와 대구제사소(大邱製絲所) 직공으로 있으며 좌익(左翼) 노동운동을 했다.
최이칠은 공산주의 관련 비밀결사를 조직해 활동하다 체포됐다. 1932년 12월 2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서울과 마산, 대구 등지에서 노동조합 조직 등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재차 체포됐다. 1937년 7월 10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8년 3월 16일 석방됐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32. 12. 2)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500~5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