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전남 보성(寶城)에 거주하였다.
의병으로 전남 보성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7월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무력투쟁인 의병이 재기하였다. 특히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전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자 일제는 의병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실시하였다. 이 같은 시기인 1908년 무렵 조동주는 강흥문(姜興文) 등과 함께 안진(安進) 의진에 참여하여 전남 보성 등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1909년 9월 6일 오후 3시 경 보성군 겸어면(兼於面) 입석(立石) 부근에서 일본군에 의해 김치선(金致善)·서장수(徐長水)·강흥문(姜興文) 등과 함께 붙잡혔다. 붙잡힌 후 동년 9월 11일 밤 보성군 봉덕면(鳳德面) 법화(法化)로 압송 도중 강흥문과 함께 탈주를 시도하다가 끝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5輯 524·546∼547(暴徒에 관한 編冊 光警秘收 제810호 1909.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