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강흥문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과 1907년 7월 '정미7조약'으로 국권이 위협받자 1908년 3월부터 정봉택(鄭鳳澤)·김일선(金日善)·박일선(朴一善)·조동주(趙同朱) 등과 함께 안진(安進) 의진에 참여하여 전남 보성 일대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1909년 9월 6일 오후 3시 경 보성군 겸어면(兼於面) 입석(立石) 부근에서 일본군에 의해 김치선(金致善)·서장수(徐長水)·조동주(趙同朱) 등과 함께 붙잡혔다. 붙잡힌 후 동년 9월 11일 밤 보성군 봉덕면(鳳德面) 법화(法化)로 압송 도중 조동주와 함께 탈주를 시도하다가 일본군의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으나 12일 끝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5輯 524·546·547面(暴徒에 관한 編冊 光警秘收 第810號 1909.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