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안진(安進) 의진에 소속되어 전남 능주(綾州)·화순(和順)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11월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고,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자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전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김경문은 송인덕(宋仁德)·송준섭(宋俊燮) 등과 함께 안진 의진에 참여하여 1908년 11월부터 전남 화순·능주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1909년 1월 능주군 남면 대곡동(臺谷洞) 김자중(金子仲)으로부터 엽전 100냥, 가림촌(加林村) 이장 이문국(李文局)으로부터 엽전 35냥 등을 모집하던 중 1909년 6월 27일 일경에 체포되었다.
김경문은 체포된 후 화순으로 압송도중에 탈출을 기도하다가 일경(日警)에 의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5輯 67面(暴徒에 관한 編冊 光警秘收 第561號 1909.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