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북 영변(寧邊) 사람이다.
일찍이 독립운동에 뜻을 두었던 그는 광동군사정치학교(廣東軍士政治學校)를 졸업한 후 국민부(國民府) 산하 독립군에 참여하여 대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다.
1920년 청산리 및 봉오동전투 이후 만주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항일역량의 결집을 위해 통합과 분리를 거듭하며 대규모의 독립운동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이들 조직은 참의부(參議府), 정의부(正義府), 신민부(新民府)로 정립(鼎立)하였다가 다시 국민부와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 정비되었다.
국민부는 1928년 9월부터 11월 사이에 있었던 3부통합회의가 결렬된 후 1929년 3월부터 새로운 군정부를 조직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하여 4월 3부(府의) 해체를 선언하고 새로이 조직한 단체이다.
중앙집행위원장을 필두로 민사, 경제, 외교, 군사, 교육, 법무, 교통위원회를 설치하여 교민들에 대한 자치행정을 겸하면서 독립군을 편성하여 강력한 대일무장항쟁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국민부 산하 독립군에 참여한 백신한은 제4중대에 배속되었다가 이후 군제개편에 따라 제9중대 제12분대장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29년 11월 30일 특수사명을 띠고 길림성 장춘(長春)에 잠입하였다가 일경의 급습을 받고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61面
- 朝鮮日報(1929.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