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제주도의 3.1운동은 신좌면 조천리에서 시작되었다. 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은 전국 각지에서 한국독립을 선언하는 시위운동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조천리(朝天里)의 유지 김시학(金時學)의 아들 김장환(金章煥)은 당시 서울 휘문학교 재학생으로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3월 15일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장환의 백부 김시우(金時宇)는 “우리는 대한민족이다. 독립운동에 결사 진력해 보자”고 하며 조카 김장환과 함께 선두에 서서 사방으로 연락을 취하여 여러 동지들을 얻었다. 21일 오후 3시경 김시범·김시은·고재륜(高載崙) 등은 물론 인근의 주민과 서당 학생 등 약 500~600명의 인원이 조천리 ‘만세동산’으로 모였다.
김시범이 큰 태극기를 ‘만세동산’ 마루에 세우고 목 메인 음성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니 모인 사람 모두 감격하였다. 선언서 낭독 후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연창하면서 큰길로 나섰는데, 수십 명의 일본 무장대에 의하여 시위군중은 해산되고 김시범 외 12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부병각은 신좌면 조천리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1919. 4. 26)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626~628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230~2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