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남 창녕(昌寧) 사람이다.
1919년 이곳 창녕군 영산읍(靈山邑)에도 서울로부터 3·1독립운동 소식이 속속 전하여지고 천도교 계통을 통하여 중앙으로부터 끊임없는 연락이 있었다.
이에 그를 비롯한 이곳 천도교인 구중회(具中會)·장진수(張振秀) 등을 중심으로 하여 독립운동 계획이 추진되고 있었다.
이들은 만세운동 날짜를 3월 13일로 결정한 후 야간을 이용하여 목판으로 많은 태극기를 찍어내고, 요약된 독립선언서도 인쇄하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도 만들었다. 이와 아울러 결사단(決死團)을 조직하여 비밀리에 애국군중의 동원을 꾀하였다.
원래 이들 23명 주동인물의 계획은 많은 사람들을 모아 대중화를 기하여 거사를 의논하려는 것이었으나 정보를 입수한 일경의 저지로 실패하자 태극기와 선언서를 많은 주민에게 배포하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이해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5. 10 釜山地方法院 馬山支廳)
- 靈山文化誌 8卷 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228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125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226∼122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