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기도 개성(開城) 사람이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등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그는 1926년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7년 3월 한국노병회에 참여하였다.
한국노병회는 192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김구 등 7명의 인사들에 의해 10년내에 10만 명의 군인을 양성하고 100만 원의 군비(軍費)를 마련하여 조국독립전쟁을 전개한다는 원대한 구상으로 조직되었다.
노병회에서는 낙양강무당에 50여 명의 한인 청년들을 유학시키는 등 독립군의 근간이 되는 군관 양성에 힘썼다. 특히 최문용은 이때 중국의 군사학교인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에 입학하여 1929년 제6기로 졸업하였다. 그후 중국군 장교로 임관하여 정치훈련처, 대일선전처(對日宣傳處) 등에 소속되어 근무하면서 임시정부의 활동을 도왔다.
1940년 9월 광복군이 창설되자 입대하여 총사령부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7월 광복군 총사령부와 중국 군사위원회에서는 대일공동전선을 확대 강화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최문용을 비롯하여 중앙전시간부훈련단 출신의 이병곤(李炳坤)과 김귀선(金貴先)을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의 중국군 제9전구 사령부로 파견하였다.
최문용 등 3명의 간부들은 중국군 제9전구 장관 사령부의 정치부에 적을 두고 정치부 주임 서중악(徐中嶽) 중장의 지휘 아래 한ㆍ일어 전단 및 표어 작성, 한ㆍ일어 벽보 작성 공작 등을 임무로 하는 심리전을 실시하였다. 또한 대적방송 실시, 포로심문 및 적 문서 번역을 통한 정보 수집, 일선 중국군 장병에 대한 일본어 대적 구호(口號) 교육 등의 작전을 수행하여 특수전 분야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國外容疑朝鮮人名簿(總督府警務局) 162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8卷 414面
- 黃 軍校同學錄 42面
- 趙桂林 自述書(作成年代 未詳)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8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6卷 447面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213面
- 光復軍名單(光復軍同志會)
- 關內地區朝鮮人反日獨立運動資料彙編(楊昭全) 上卷 71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