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20년대 중반 이래 김제지역의 청년단체 간부로서 지역의 청년운동을 주도하였다. 1925년 12월 20일 전라북도 김제군에서 김제청년연맹 발기를 위한 준비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김제청년연맹은 김제청년회(金堤靑年會)·공덕청년회(孔德靑年會)·부용친목회(芙蓉親睦會) 등 김제군 내 청년단체들 상호간의 연합조직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1927년 11월 27일 김제청년동맹의 검사위원(檢査委員)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이 사이에 1926년 8월 3일 ‘모 중대 사건’ 관련 혐의로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에 체포되었다가, 9월 2일 방면되었다.
신간회 김제지회의 설립과 활동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27년 7월 3일 읍내 만화루(萬化樓)에서 개최된 신간회 김제지회 설립대회에서 부의장으로서 강령 설명·규칙 통과·축문(祝文) 낭독·역원(役員) 선거 등을 진행하였다. 이후 1928년 6월 검거될 때까지 신간회 김제지회의 정치문화부 책임·부회장·대의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6월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 김제지국의 공덕주재기자(孔德駐在記者)로 임명되었다.
1927년 음력 7월 하순경 김제노동조합장(金堤勞動組合長)이자 신간회 김제지회 상무간사였던 전기환(全崎煥)으로부터 권총과 실탄의 보관을 의뢰받아, 이를 1928년 음력 2월경까지 김제군 공덕면(孔德面) 마현리(馬峴里)의 자택 항아리 속에 보관하였다. 평안북도(平安北道) 의주 출신으로서 통의부(統義府) 계통에서 활동하던 조인현(趙仁賢)이 국내로 들어와 목포(木浦)·김제·이리(裡里) 등지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와 관공서(官公署) 등의 습격을 목적으로 폭탄을 제조하고 총기를 확보하는 등으로 활동하였는데, 여기에 참여하여 활동했던 것이다.
이른바 ‘전북 통의부 사건’, ‘전북 폭탄 사건’ 등으로 불리던 이 사건에 연루되어, 1928년 6월 2~3일 조인현·전기환을 비롯해 소혁규(蘇赫奎)·송시용(宋始鏞)·김종철(金宗喆)·오오득(吳五得)·박영관(朴永寬)·오석완(吳碩完)·정기환(鄭基煥) 등 다수의 동지들과 함께 전라북도경찰부(全羅北道警察部)에 체포되었다. 1930년 3월 12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 150일)을 선고받았다.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4월 15일 전기환·오석완과 함께 형 집행 만기로 출옥하였다.
같은 해 12월 동아일보사 김제지국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32년 1월 동아일보 지국을 대표하여 김제기자단(金堤記者團) 조직에 참여하였다. 1931년 10~11월 김제지역 정미소(精米所) 인부들의 동맹파업(同盟罷業) 관계로 김제합동노동조합(金堤合同勞動組合) 간부 김혁진(金革進)·오오득 등과 함께 또 다시 전라북도경찰부에 체포되었다가, 11월 16일 석방되었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전주지방법원:1930. 3. 12)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중외일보(中外日報)(1925. 12. 23, 1927. 6. 15, 7. 20, 10. 14, 1928. 6. 5, 6. 9, 1930. 3. 6, 4. 18)
- 동아일보(東亞日報)(1925. 12. 26, 1926. 9. 4, 1927. 7. 5, 11. 30, 1928. 2. 1, 2. 8, 1929. 6. 16, 12. 12~14, 1930. 3. 7, 1931. 10. 31, 11. 18, 12. 4)
- 매일신보(每日申報)(1927. 7. 17, 1930. 3. 8, 4. 33, 1932. 1. 22)
- 조선일보(朝鮮日報)(1930. 3. 7)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484~485면
- 독립유공자공훈록(조인현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