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중국에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고 국내로 들어와 일제 식민 지배기관 파괴와 적 요인 처단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낙준은 1919년 10월 중국 길림(吉林)에서 김원봉(金元鳳) 등의 권유로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의열단은 1919년 11월 10일 만주 길림성 파호문(巴虎門) 밖 중국인의 집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로 “천하의 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당시 만주와 노령(露領) 방면의 일단의 독립운동가들은 조직적인 무장투쟁과 폭력적인 수단의 총동원에 의해서 만이 일제로부터 민족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되찾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육탄혈전(肉彈血戰)’에 의한 대일항쟁의 방책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의열단이 결성되었다.
이낙준은 1920년 6월 김원봉의 명령을 받고 국내로 입국하여 서울에서 곽재기(郭在驥)·이성우(李成宇)·황상규(黃尙奎) 등과 협의하여 조선총독부 등 적 시설의 파괴, 요인 암살 등을 기도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년 6월 이낙준은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폭발물단속위반 혐의로 7년형을 선고 받고 1926년 4월 24일 함흥형무소에서 만기 출소하였으며, 1932년 3월 다시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7-19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1집 161-163, 660-673면
- 國外容疑朝鮮人名簿 291면
- 時代日報(1926. 4. 30)
- 現代史資料(姜德相) 제27권 4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