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평북 벽동(碧潼) 사람이다.
1933년 중국에 건너간 그는 남경의 의열단(義烈團) 간부학교인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를 제2기생으로 졸업하였다.
그 후 의열단의 중앙당 연결업무를 맡아 활동하였고, 1936년 2월에는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조직 검사국의 직원으로 활동하였다.
계속하여 광동국립중산대학부중(廣東國立中山大學附中) 및 중원중학(仲元中學)에서 수학하였으며, 중앙육군군관학교(中國中央陸軍軍官學校) 특별 훈련반에서 훈련을 받은 뒤 1938년 5월 졸업하였다.
이어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에 입대하여 제2지대에 배치된 뒤 상북(湘北)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 남악(南嶽)으로 이동, 유격훈련을 마친 뒤 화북지방으로 진출하여 임무를 수행하였다.
조선의용대 제2지대는 적후의 동포들을 위하여 강력한 혁명무장대오를 건립한다는 목표 아래 적후방에 침투하여 대적선전과 유격전을 전개하여 수십 차례에 걸친 격전을 치렀다. 특히 1941년 12월 하북 형태(邢台) 부근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치러 백여 명을 사살하고 무수한 전리품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조선의용대가 중국항전에 참가한 이래 최대의 전과였다.
그는 호가장(胡家莊) 전투에서 동지 3명과 함께 적탄에 맞아 전사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제6집 435∼438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其二) 25·432·434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67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총서(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제2집 334면
- 신천지(서울신문사, 1946. 5월호) 102면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제8집 526·552∼556·561·563·565∼581면
- 사상휘보(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제22호 163면
- 신천지(서울신문사, 1946. 3월호) 222∼2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