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조영선은 전라남도 곡성(谷城) 출신으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화를 주장하며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1906년 담양(潭陽)에서 최익현(崔益鉉)과 그리고 용추사(龍湫寺)에서 송사 기우만(奇宇萬)을 비롯한 호남선비 50여명과 함께 천하대사를 의논하였다.
순창(淳昌) 일대에서 최익현의 의진이 명성을 떨치자 의진에 입진하여 정읍·순창·곡성 등지에서 병력을 보강하고 순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순창에 이르자 관찰사 이도재(李道宰)가 의병해산을 권고하는 황제의 칙서와 고시문(告示文)을 전달하여 왔다.
한편에서는 읍의 동북쪽에서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보고가 들어와 돈헌 임병찬(遯軒 林炳瓚)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보니 왜군이 아니라 전주와 남원 방면에서 들어온 진위대였다.
면암은 구국을 위한 의거인데 관군과 더불어 전투할 수 없다고 그들에게 물러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관군은 포격을 가하였고 의진은 모두 흩어졌다. 면암의 주위에는 조영선을 비롯한 12인의 문인들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이들은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는 관군에게 전혀 대항하지 않았다. 끝내 관군에게 체포되어 경성으로 압송되었으며 조영선은 태형(笞刑) 100도의 형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기려수필 10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77∼382면
- 매천야록 38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55∼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