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광주서중학교 재학중인 1940년 3월에 선배 유몽룡(劉夢龍)의 소개로 동교의 항일학생결사 무등회(無等會)에 가입하였다. 무등회는 1938년에 조직되었던 서중독서회(西中讀書會)가 확대 개편하면서 개칭된 것으로 일제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독립을 목적한 결사였다. 그는 무등회의 주요 회원으로서 동지포섭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1942년 10월에 신병으로 학교를 휴학하였고, 다음해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예비학교, 신숙(新宿)고등예비학교에 다녔으나 곧 귀국하여 교외(校外)에서 무등회와 관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무렵 교내에서는 박화진·배종국 등 5학년생이 중심이 되어 교풍쇄신운동을 표방하면서 일제 식민통치에 대항하였는데, 그러한 활동이 일경에 탐지되어 주동학생들이 검속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무등회를 중심한 광주서중의 학생들은 이를 계기로 학병지원반대·창씨개명반대·일어상용반대·징병제도반대 등을 내걸고 1943년 5월 21일에 일제히 동맹휴학에 돌입하였다. 이를 세칭 광주서중의 제2차독립운동이라고 하는데 이때 그는 무등회사건에 연루되어 붙잡혔다. 붙잡힌 후 1년여간 고문취조를 받다가 1944년 9월에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2년, 장기 4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806·811·813면
- 판결문(1944. 9. 18 광주지방법원)
- 광주학생독립운동사 87·247·248·249·705·8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