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5년 처형을 따라 서간도 유하현 수하자(水河子)로 건너가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 1920년 4월 동교를 졸업하였다.
그후 교성대(敎成隊)에 편입되어 활동하다가 5월 대한통의부 의용군에 가입, 제5중대 제1소대 이동건(李東健)의 부하로 활동하였다.
동년 7월 그는 소대장 이동건, 유연덕(柳淵德)과 더불어 대한통의부 본부로부터 군자금 조달의 명령을 받고 대구에 들어와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10월 신흥무관학교의 동창생인 이겸호(李謙浩)와 신형섭(申亨燮)을 만나 대한통의부의 실상을 이야기하고 군자금 모집에 협조할 것을 당부하였다. 1924년 4월에는 안동에서 권동호(權東鎬)와 이겸호를 다시 만나 영덕(盈德) 영해(寧海)방면에서 군자금 모집에 착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동년 6월 창수면(蒼水面) 오촌동(梧村洞)에서 일경의 검문을 받게 되자 총격을 가하고 도피하였다. 이후 각지로 전전하면서 활약하다가 동년 9월 18일 경기도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1925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후에는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평생을 폐인으로 두문불출하며 지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고등경찰요사 228·231·23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467·469면
- 판결문(1925. 1. 22 대구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