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제3분대요원으로서 항일활동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407면
관리번호 | 87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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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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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俊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본적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90 | 훈격 |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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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제3분대요원으로서 항일활동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하였다.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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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김영준 | - | 평안남도 대동(大同) | - | |
본문 |
1901년 7월 3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대동강면(大同江面) 정백리(貞栢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평양부(平壤府) 수옥리(水玉里)로 이주하였고, 평양소학교(平壤小學校)를 졸업하고 생업에 종사하였다. ‘광복군 제2지대 명부’에는 독립운동 투신 이전의 직업이 상업으로, 특기가 석공石工으로 기재되어 있다. 같은 대동군 출신으로 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대원인 장경숙(張京淑)이 부인이다.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上海)에서 거주하다가 윤봉길(尹奉吉) 의거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동함에 따라 가족과 함께 중국 내륙을 옮겨 다녔다. 1941년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서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 입대하였다. 1941년 6월에는 중국 제34집단군 전시간부훈련단(戰時幹部訓練團) 내에 설치된 한국청년훈련반(일명 (韓靑班))에서 훈련받았다.1942년 5월 이래 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제3분대원으로 일본군 후방에서 심리전·선전 선동과 초모활동(招募活動)에 참여하였다. 1945년 미 OSS와 합작으로 ‘독수리 작전(Project Eagle)’ 훈련에 참가하여 시안 근교 두취(杜曲)에서 약 3개월간 유격·폭파훈련과 암호통신 교육을 이수하고, 국내진공을 대기하였다.1945년 8월 15일 일제 패망 후에는 일본군의 무장해제, 한인교포의 신변 보호와 귀국을 지원하였다. 그러다가 1946년 6월 제2지대장인 이범석(李範奭)의 인솔 아래 귀국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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