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414·550면
관리번호 | 868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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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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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炳益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본적 |
운동계열 | 광복군 | 포상년도 | 1990 | 훈격 |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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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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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강병익 | - | 평안북도 창성(昌城) | - | |
본문 |
1913년 12월 22일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청산면(靑山面) 율곡동(栗谷洞)에서 태어났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 활동하였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는 징모 제6분처가 발전하여 성립되었다. 징모 제6분처는 일본군 점령 지역과 근접한 안후이성(安徽省)푸양(阜陽)에 정착한 후 초모 공작을 전개하였다. 제3지대에서는 중국 내의 지하 조직망을 화북, 화중, 화남 지역으로 나누고 이를 기반으로 전방 공작원을 파견하였다. 화중 지역 공작책은 한광반(韓光班) 출신의 윤창호(尹昌浩)였다. 화중 지역은 다시 쉬저우(徐州)·칭다오(靑島)·지난(濟南)·카이펑(開封)·구이더(歸德)·방부(蚌埠)·쑤현(宿縣)·화이양(淮陽)·루이(鹿邑)지구로 나누었다. 이 가운데 쑤현·구이더지구 공작원은 이원하(李元河)·신조일(申朝日)·조병팔(趙炳八)이었다.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의 화중 지역 공작책인 윤창호와 접선하고 지하공작에 힘써오던 이원하는 신조일·조병팔 등과 더불어 적 후방 지역인 쑤현·구이더 등지로 파견되어 지하공작을 벌였다. 강병익은 이원하 등과 이미 사전에 접선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안내로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그 외에도 이원하 등은 최규련(崔奎連)·유창근(劉昌巹)·김철(金哲)·김옥선(金玉仙)·장부희(張富熙)·최시화(崔時華)·유순희(劉順姬)·김만식(金萬植) 등과 접촉하여 이들을 구이더·쑤현·루이에서부터 인솔하여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시켰다. 이후 일정한 교육과 훈련을 거쳐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었다. 최규련의 경우 북지공사(北支公司)를 자영(自營)할 때 쓰던 운수업용 트럭 여러 대를 처분하여 마련한 90여만 원의 거액을 지대에 헌납하여 적 후방 공작비에 유효하게 충당하기도 하였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 활동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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