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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861
성명
한자 金正演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국장
3.1운동 당시 예천 길안 독립만세 사건에 주모자로서 길안면사무소 주재소를 습격, 기물파괴하고 피신중 상해 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5년 언도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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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북도 예천(醴泉) 사람이다.

1919년 3월 21일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과 안동군(安東郡) 길안면 천지(吉安面泉旨) 장날을 이용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미리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과 태극기를 제작하여 두었으나, 이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천지에 있는 일본 경찰주재소의 삼엄한 주시를 받아왔다.

그러나 3월 21일 오후 3시경 당초의 계획을 강행하여 300여명의 시위군중을 모으고, 그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을 행진하다가, 면장과 면서기들도 만세시위 대열에 합류시키기 위하여 면사무소로 진격하였다. 이때 미리 대기중이던 일본 경찰이 제지하자, 시위군중을 지휘하여 투석으로 면사무소 입구의 유리와 문짝을 파괴하였다. 오후 7시경에는 방향을 경찰주재소로 돌려 총기를 휴대하고 경비중이던 일본경찰과 충돌하였다. 그는 선두에 서서 투석으로 강경하게 대항하였으나 일본 경찰이 총격을 가하여 시위군중은 부득이 해산하였다.

이에 그와 손영학(孫永學)·김정익(金正翼) 등 3인은 일단 피신하여 의성읍내 박재하(朴在夏)의 집에 은신하여, 1920년 2월 상해 임시정부로 가기 위한 자금마련을 계획하던 중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천지시장 만세시위 주동자로서 1920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0. 5. 21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364·136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01·402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정연 자 : 장언(長彦) 경상북도 예천(醴泉) 안동군 길안면 만세운동
본문
1891년 7월 25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문면(龍文面) 상금곡리(上金谷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장언(長彦)이다. 1919년 안동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안동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3일 안동면(安東面)에서 일어난 이상동(李相東)의 1인 시위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3월 27일 풍남면(豊南面) 하회동(河回洞) 만세시위에 이르기까지 안동에서는 모두 14회에 걸쳐 10,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3월 17일부터 23일까지가 절정기였다.당시 임하면(臨河面) 오대동(梧垈洞)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김정익(金正翼)·손영학(孫永學)·장두희(張斗凞) 등과 함께 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일은 길안면에 있는 천지시장(泉旨市場) 장날인 3월 21일로 정하였다. 오대동은 행정 구역으로는 임하면에 속하지만, 거리로는 길안면이 더 가까워서 길안면 천지시장을 거사 장소로 택한 것이었다.1919년 3월 21일 김정익, 손영학과 아침 일찍 천지시장에 가서 당목(唐木) 천을 사서 ‘대한 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을 만들었다. 그 날 오후 5시쯤 천지시장 한 가운데서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시장에 모인 장꾼들이 일제히 호응하였다. 오후 6시쯤 시위대와 행진하여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장과 면서기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김정익·손영학과 함께 면사무소로 들어가려 하자, 순사가 가로막았다. 격분한 시위대는 면사무소에 돌을 던지고 유리창과 출입문을 부수고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 시위를 계속하였다. 시위대는 다시 길안주재소로 몰려가 돌을 던지며 항의하였다. 그러자 순사들이 총을 쏘아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3월 22일 오후에 다시 수백 명의 시위대가 길안주재소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이후 며칠 동안 검거 선풍이 있었으나, 김정익·손영학과 함께 피신에 성공하여 의성군 의성면에 있는 박재하(朴在夏)의 집에서 숨어 지냈다.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갈 여비를 마련하던 중 1920년 2월 11일 붙잡혔다.1920년 5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 강도 예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6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소요, 보안법위반, 강도예비 징역 5년 대구지방법원 1920-05-21 국가기록원
2 판결문 소요, 보안법위반, 강도예비 공소 기각 대구복심법원 1920-06-12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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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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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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