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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849
성명
한자 金基權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국장
1926년 광주(光州)학생결사인 성진회(醒進會), 독서회(讀書會)를 조직 주도하다가 1928. 10. 5일 맹휴(盟休) 주도자로 피체되어 징역 6월형을 받았으며 광주(光州)학생대시위로 체포되어 1931. 6. 13 대구(大邱) 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었을 뿐 아니라 소비조합 운영을 위하여 거금 500원을 출자하는 등의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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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광주(光州) 사람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 1926년 11월 3일 당시 광주 부동정(不動町) 소재 최규창(崔圭昌)의 하숙방에서 장재성(張載性)·왕재일(王在一)을 비롯한 광주고보·농고생 15명과 함께 조국의 독립, 사회과학 연구, 식민지 노예 교육 반대 등을 강령으로 하는 항일학생결사인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였다.

동회의 운영은 월회비 10전, 매월 제1·3토요일에 모여서 민족적 교양의 함양과 사회과학을 통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연구하기로 하였다. 또한 회원들은 비밀엄수와 동지포섭 등으로 조직확대에 힘쓰기로 하였다.

그런데 1927년 3월에 회원중 이반자가 생겨 기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었음으로 회원 정남균(鄭南均)의 집에 모여 성진회를 해체하였다. 그러나 동회의 해체는 형식적이었을 뿐으로 주동학생들의 활동은 계속해 나갔다.

1928년 6월에 그는 광주고보생 이경채(李景采)에 대한 학교측의 퇴학처분에 대해 복교운동을 펴기로 결정하고 동교생 임주홍(林周弘)·최규창 등 2·3·4학년생들과 힘을 모아 학교측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한편, 동맹휴교를 결의 지도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동년 7월, 최규창의 하숙방에 동지들과 모여 맹휴대책 중앙본부를 설치하고 격문을 작성하여 학부형 및 학우들에게 발송하였다. 이렇게 맹휴를 지도하던 중 일경에 붙잡혔으며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무렵 광주학생계는 성진회 해체이후 분산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는데 1929년 6월에 동경(東京)에서 돌아온 장재성의 주장에 의하여 광주시내 각학교 학생지도자들은 그의 집에 모여 비밀결사〈독서회중앙본부〉를 조직하였다. 한편 〈독서회중앙본부〉는 독서회원의 목적 수행을 위한 재정 활동으로 소비조합을 설치하였는데 이 때 그는 운영자금으로 500원을 출자하였으며 소비조합의 영업을 담당하였다.

이렇게 항일활동을 계속하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도 성진회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일경의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8. 10. 5 대구지방법원)
  •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2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93·496·498·514·525면
  • 동아일보(1928. 10. 9, 10. 10)
  • 판결문(1930. 10. 27 광주지방법원)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2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65·901·1624∼1633·1654∼1708·1726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기권 - 전라남도 광주(光州) 광주학생운동,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사건
본문
1910년 9월 11일 전라남도 광주부(光州府) 광주면(光州面) 양림정(楊林町)에서 출생하였다.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재학 중 1928년 6월 ‘이경채(李景采) 사건’으로 촉발된 광주고보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같은 해 7월 김몽길(金夢吉)·여도현(呂道鉉)·임주홍(林周弘)·최규창(崔圭昌) 등과 함께 광주고보 맹휴중앙본부(盟休中央本部)를 결성하고 조직적 활동을 위해 중앙본부에 참모부·통신부·외교부·회계부 등을 구성하였다. 이후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8월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으며,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같은 해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 형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6년 11월 비밀결사 성진회 조직을 주도하고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간 장재성(張載性)이 도쿄(東京) 주오대학(中央大學)을 중퇴하고 1929년 6월 귀향하자, 독서회 중앙본부 설립에 힘을 합쳤다. 9월에는 500원을 출자하여 장석천(張錫天)·나승규(羅承奎) 등과 함께 광주고보의 김보섭(金普燮)·윤창하(尹敞夏), 광주농업학교의 김순복(金順福)·조길룡(曺吉龍), 전남사범학교의 강달모(姜達模)·송동식(宋東植) 등을 지도하며 북성정(北城町)에 자신 명의의 문구점으로 위장한 소비조합을 설립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성진회사건(醒進會事件)’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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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증빙인멸 징역 6월 광주지방법원 1928-10-05 국가기록원
2 판결문 치안유지법, 보안법위반, 출판법위반 광주지법 공판에 부침 광주지방법원 1930-07-17 국가기록원
3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징역 2년6월 미결구류일수 80일 본형에 산입 광주지방법원형사부 1930-10-27 국가기록원
4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징역 1년 미결구류일수 중 365일 본형에 산입 대구복심법원 1931-06-13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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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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