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남 원산(元山) 사람이다.
서울에서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미국인이 경영하는 여학교 교사로 재직중 보합단(普合團)의 이종영(李鍾榮)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독립운동에 투신할 결심으로 서울로 와서 1920년 8월 관철동 한성여관에 있는 이종영을 찾아보고 그 방안을 의논하였다.
이에 이종영은 철산군 차련관(車輦館)의 장선욱(張善郁)을 찾아가도록 권유하여 철산에서 보합단(普合團)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장정용·김도원(金道源) 등과도 알게되었다. 이들은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액의 군자금이 필요하다는 의견의 통일을 보고, 서울에서 군자금을 모집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먼저 상경하고, 11월 15일에 김도원·이광세(李光世)·장정용(張廷鏞)이 무기를 가지고 뒤쫓아 올라왔다.
이들은 서울의 부호인 운니동(雲泥洞)의 변석연(邊錫淵)에게 독립운동 군자금을 원조하도록 찾아가 군자금건에 관하여 상의하던 중,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일경 3명과 교전하게 되었다. 김도원은 그중 2명을 사살하고 도피하였으나, 응원경찰대의 추격을 받게되어 익선동에서 탄환이 떨어져 체포되었다. 이것이 당시 세상을 놀라게 한 '운니동사건'이다.
이에 이광세·이종영·장석두·김내홍·김내범과 함께 그도 체포되어 모두 22명이 구속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1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7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87면
- 동아일보(1921. 7. 25, 11. 27, 1922.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