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정시해는 면암의 문인으로서 전라북도 고창(高敞) 출신이다. 1906년 4월 호남에서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이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는 의보(義報)를 받고 면암의 친서(親書)를 영남지사들에게 전달하여 영남에서 면암의 의거에 호응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후 면암의 소모장(召募將)이 되어 병력증강에 심혈을 기울였다. 6월 5일 임병찬, 김기술, 유종구, 김재귀, 강종회 등과 부서를 나누어 관장하고, 정읍(井邑)으로 출발하였다. 정읍에서 각종의 무기를 접수하고 내장사에 들어가 유진한 후 6일 순창에서 무력을 증강하여 곡성으로 진군하였다. 9일 회군하여 오산촌(鰲山村)을 거쳐 10일에 순창으로 되돌아왔다. 이때 왜병이 읍 동북쪽에서 들어온다는 보고가 있었다. 임병찬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보니 왜군이 아니라 전주·남원의 진위대 군사들이었다. 면암은 관군인 진위대와 접전할 수 없다며 그들에게 물러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진위대는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먼저 포화를 퍼부었다. 이 접전에서 중군장의 임무를 맡은 정시해는 적의 탄환에 맞아 순국하였다. 정시해는 임종할 때 면암에게
'시해는 왜놈 하나도 죽인 일이 없이 죽으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습니다. 악귀가 되어서라도 선생을 도와 적을 죽이겠습니다.'
하고 운명하였다. 면암은 나기덕에게 명하여 정시해의 명정(銘旌)을 '대한국의사정시해지구(大韓國義士鄭時海之柩)'라 쓰게 하고 후히 장사지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매천야록 382면
- 기려수필 10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77-38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55·59·85·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