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북도 순창(淳昌) 출신이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 승리한 일제가 그 여세를 몰아 한반도 식민지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당대의 거유(巨儒) 최익현(崔益鉉)이 의거할 것을 결심하고 판서 이용원(李容元)·김학진(金鶴鎭) 등에게 글을 보내어 함께 창의구국(倡義救國)할 것을 역설하였으나 실패하고,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살고 있는 돈헌 임병찬(遯軒 林炳瓚)과 의논을 하여 태인·순창 일대를 거점으로 거의하자고 결정하였다. 이에 임병찬은 1906년 4월 6일 양윤숙(楊允淑)을 보내어 순창 삼방(三防)의 포수인 채영찬에게 입진할 것을 종용하여 면암 의진에 소속하게 되었다. 그후 채영찬은 면암 의진의 대포장(大砲將)으로 임명되어 순창일대에서 활약하였으나 윤4월 20일에 광주 관찰사 이도재(李道宰)가 보내는 황제의 조칙과 관찰사의 고시문을 보내 와서 의진의 해산을 권고하니 결국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채영찬은 뒤에 다시 순창군 창의장 김상기(金相璣) 의진에 가담하여 경북 하동군 화개동에서 견양의장(見陽義將) 백낙구(白樂九)와 합세하여 전라남도 순천(順天)을 함락시킬 계획으로 공격하였으나 접전 중에 백낙구와 함께 체포되어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 일년 후에 석방되어 다시 의병 20명과 함께 총 10정, 칼 2본 등으로 순창·태인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08년 5월 적에게 해침을 당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기려수필 108·10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69∼378·380∼382면
- 돈헌병오창의일기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6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