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기도 파주(坡州) 사람이다.
1938년에 한국독립당과 한국국민당이 통합되고 미국에 있는 대한독립단, 동지회, 국민회, 부인애국단, 단합회 등을 통합하여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조직하고 임시정부의 외곽단체로서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때 그는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 가담하여 항일연극과 강연, 합창, 그리고 전단을 배포하는 등 반일사상의 고취와 함께 초모공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일본 군대에 있던 한국인 병사들의 마음을 움직여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이 되도록 하는데 큰 동기를 부여하였다.
1939년 11월 중경(重慶)에서 임정의 인재양성계획에 따라 중국중앙군관학교 특별훈련반 교통과에 입교하였으며, 1941년 12월에 중국중앙군관학교 제17기를 졸업하였다.
중앙군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0년에 한국 광복군이 창설되자 그는 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지대장인 김학규(金學奎) 수하에서 간부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일본군에 강제로 징집되어 참전한 한국사병들을 초모하기에 진력하여 다수 학병과 지원병 및 징집병을 포섭하고 이들을 훈련시켜 중경(重慶)의 총사령부로 보내어 임시정부 및 한국광복군에 배치케 하였던 것이다.
1942년 4월부터는 상위(上尉)로 중경(重慶)에 있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어 근무하였으며, 1943년 1월에는 임정 한인청년회 문화부장으로, 그리고 동년 8월에는 총사령부 서무과장으로 근무하였다.
1944년 6월에는 이시영(李始榮) 재무장으로부터 위임장을 받고 임정 재무부 이재과장(理財科長)으로 근무하였다.
1945년 3월부터는 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8월에는 개봉지구(開封地區)로 파견되어 그 곳에서 광복활동을 전개하였다. 그후 만주(滿洲)로 가서 대한민국 주화대표단 동북 총판사처 외무주임(大韓民國 駐華代表團 東北 總辦事處 外務主任)으로 근무하면서 자위대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50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5권 79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779·857·85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930·947·103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57·379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263·474·51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405 6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