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황해도 안악(安岳) 사람이다. 1924년 부친 김기형(金基瀅)을 찾아 일가족이 상해로 망명하였다. 그는 "3·1공학"에서 철저한 민족 교육을 받고 1930년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3년 11월 중국 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 군관훈련반 제3기 제17대에 입대하였다. 1936년 위 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에 임관되어 다음해에 소주전선(蘇州戰線)에 참전하였다. 1939년 중경(重慶)에서 김 인(金仁)·이재현(李在賢)·김원영(金元英) 등과 같이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조직 활동하다가 1939년부터는 임시정부에서 근무하면서 김 구주석을 경호하였다. 1940년 9월 17일 광복군의 창립과 동시에 광복군에 입대하여 총사령부에서 참모로 근무하였다. 그는 다음해 곤명(昆明)에서 한·일·월남·버어마 등 4개국어로 작성되고 그림을 넣은 광복군 선전전단 1백만 매를 작성하여 항공기로 수차례 최전선 및 후방에 살포하였다. 1944년에는 곤명에 있는 미 제5군사령부 특파원에 임명되어 대적 선전공작을 하였으며 또한 김철군·유재원 등 그리고 운남성 방위군과 같이 중국·버어마 국경 지대에 진출하여 광복군의 용맹성을 연합군에 보여주었다. 이 보다 앞서 1941년에는 중경에서 영국대사관 정보처와 합작공작을 하던 중 1943년 3월 안원생(安原生)과 같이 미 공군 정보장교 윔스(clarence n. weems)를 만나 미국 전략 정보처(oss)와 제휴하여 한·미 합동의 정보활동을 실시하였다. 1944년 6월에는 임시정부 외무부 총무 과장으로 임명되어 광복시까지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조선통치사료(한국사료연구소) 479·510·512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28·266·447·456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244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541·696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85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02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27·320·491·513·5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