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황해도 장연(長淵) 사람이다. 일찍부터 동향(同鄕)인 김구(金九)를 따라 독립운동에 종사한 부친 김보연(金甫淵)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 부모를 잃은 까닭에 안원생(安原生)에게 시집간 누이 김영애(金永愛)의 거처인 북평(北平)에서 거주하였다. 1935년 2월 김구가 중국측과 교섭하여 한국특무대독립군(韓國特務隊獨立軍)과는 별도로 남경(南京) 성내 동관두(東關頭) 23호에 학생훈련소(學生訓練所)를 설치하자 약 30여 명의 한국인 청년들과 함께 이 훈련소에 입소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 학생훈련소는 남경의 중국 중앙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에 입교하기 전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비군사교육을 실시할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남경의 중앙군관학교를 19기로 졸업한 후 1935년 8월 하순 김학무(金學武)·이성황(李成煌)·정성언(鄭成彦) 등이 조직한 사회주의 비밀결사 혁명동지회(革命同志會 일명 10월회)에 입회하여 활동하였으며, 1938년에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중국의 항공위원회(航空委員會) 군관학생이 된 후 다시 공군군관학교(空軍軍官學校) 15기 군관학생으로 발탁되어 곤명(昆明)에서 항공군사훈련을 받았으며, 1944년 2월 인도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 1945년 1월 상해(上海)로 돌아왔다. 상해로 돌아온 후 지강공군기지(芷江空軍基地)의 중미혼합단(中美混合團) 공군준위견습관(空軍准尉見習官)으로 배속된 그는 1945년 2월 7일 명을 받고 출격하여 악양(岳陽)·형양(衡陽) 등지에서 일본군 운수부대를 소탕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와 같이 대일작전(對日作戰)을 전개하던 중 3월 24일 일본군 공격을 위해 출격하였으나, 불행히 애기(愛機)가 추락하는 바람에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4卷 771面
- 思想情勢視察報告集 224·265·389面
- 思想情勢視察報告集 其2 445面
- 大韓民國臨時政府議政院文書(國會圖書館) 53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6卷 405面
- 獨立新聞(1945. 7. 20)
- 韓國光復軍硏究(韓詩俊) 66面
- 寫眞(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在柳州與各機關團體代表 留別記念撮影: 1939.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