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남도 고흥(高興) 출신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국제적 정세하에서 일찍이 위기의식을 느껴 온 한민족은 일제의 정치적, 경제적 침탈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었다.
1905년 이후 일제는 한반도 식민지화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1907년에는 대한제국군마저 해산시켰다.
일찍이 의병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났지만 주로 유생들 중심이었고 후기 의병운동에 이르러서는 일반 기층사회민의 의병운동이 활발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보성(寶城)의 담살이 안규홍(安圭洪)의 의진이다.
송기휴는 안규홍의 의진에 입대하여 참모관(參謀官)에 임명되었다. 여기에는 보성 출신 인물도 많았지만 고흥의 김직순(金稷淳) 등도 참여하고 있었다.
송기휴는 안규홍 의진에서 2년여 동안 크고 작은 전투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중요한 전투는 1908년 2월의 파청(巴靑) 전투, 4월의 비들기치의 전투, 5월의 문덕(文德) 양가랭이치 그리고 운월치(雲月峙) 등의 전투에서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을 뿐 아니라 많은 군수품을 빼앗아 재무장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유격장 안택환(安宅煥)과 서기 임준현(任準鉉;淨鉉)이 전사하는 불행을 겪었다. 이때 그 뒤를 이어 송기휴는 유격장으로 임명받았다.
1909년 7월 안규홍 의진이 해산될 때까지 보성·순천·광양·여수·돌산·곡성·남원·구례·장흥·순창 일대에서 안규홍을 보좌하였다. 그러나 세부득이하여 일단 의병을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안규홍·염재보(廉在輔)·정기찬(鄭基贊)이 보성에서 체포되고 송기휴는 낙안(樂安)에서 적에게 체포되었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3권 322·358·359·94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07·608·6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