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군(日軍) : 일제 군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황해도 해주(海州) 사람이다. 그는 해주 보통학교 및 동 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에 유학하여 1933년 4월 조도전 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다. 1937년 3월 중국인 학생을 가장하고 독일 기선을 타고 일본 장기(長崎)를 탈출하여 절강성 영파(浙江省 寧波)로 망명하였다. 1937년 8월 중국 중앙군 제3전구 영파 방수사령부(防守司令部) 정치부에 특채되어 1939년 12월 소교(少校)로 진급하고 3전구 방송국에서 반전방송을 하였으며 일본군 포로 심문과 일본 문서 및 서적 등에서 적의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중앙군관학교 제3분교에서 특수교육을 받았다. 1940년 9월 광복군을 창설함에 중경에 복귀하였다. 다음 해 3월 1일에 임시정부 청사에서 광복군 제3징모처(第三徵募處) 임명식이 거행되어 그는 주임위원 겸 선전 조장에 임명되어 강서성 상요(江西省 上饒) 방면에 파견되었으며, 제3지대 편성을 위한 준비활동을 하였다. 그는 대원들과 함께 염전사상고취 전단, 일본군 귀순통행증 등을 화물차에 싣고 야전 방송기재를 휴대하고 금화지구로 출동하여 선전물을 살포하고 일선방송을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선전물을 미군 비행대에 공급하여 적군 점령지역에 공중 살포하게도 하였다. 그리고 각종 선전물을 갖고 절강성 천태현(天台縣)으로 나가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중국 제1유격 정진군종대(挺進軍縱隊) 사령부와 합작하여 일선공작을 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1942년 4월 조선의용대가 제1지대로 편입되는 등 광복군의 조직을 개편함에 따라 징모제3분처는 제2지대 제3구대 제3분대로 편성되었다. 당초 1개 지대의 편성을 목표로 하였던 징모제3분처를 한지대의 1개분대로 하고 분처 주임인 그를 분대장으로 개편한 것이다. 그러나 실지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제2지대 본부가 있던 섬서성 서안과 제3분처의 소재지인 남평과는 수천 리의 원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통신연락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따라서 주임위원인 그를 중심으로 한 간부회의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전선과 후방에서 중국 유격대와 합동 공작으로 정보·선전공작을 전개하며 포로심문을 통하여 적의 일선 및 후방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공작에 활용하였다. 1944년부터 그의 분대는 건양(建陽)에 근거지를 두고 항일선전 및 초모공작과 한미(韓美) 합작의 작전을 지원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57 373 379면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3권 222 223 224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자료 1권 475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624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777·781·82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211 233 234 236 237 238 439 440 44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38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5권 74 85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235·237·264·267·8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