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함경남도(咸鏡南道) 풍산군(豐山君) 천남면(川南面) 출신이다. 1923년 9월부터 10월 말까지 이덕(李德)과 재무 박정덕(朴貞德)이 지휘하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모연대원(募捐隊員)으로 활동하였다. 이들이 중국 목단강지역에서 모집한 자금은 중동선 소수(小綬) 분성구(芬城舊)에 있는 대한독립군단의 사관학교에 송부하였다.
1927년 11월 15일경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여 민사부(民事部) 위원이 되고, 지방민정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신민부는 북만주지역의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하여 1925년 1월 목릉현(穆陵縣)에 모여 부여족통일회의(扶餘族統一會議)를 개최한 결과 같은 해 3월 영안현(寧安縣) 영안성(寧安城)에서 조직되었다. 1928년 1월 일제 경찰과 중국군 1개 중대가 습격하여 신민부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장인 김혁(金赫)과 경리부 위원장 유정근(兪正根) 등이 체포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이어서 일제 경찰은 1928년 2월 4일 중동선(中東線) 위사현(韋沙縣) 석두하자(石頭河子)에 하얼빈(哈爾濱) 일본총영사관 순사 10여 명과 중국 순경 22명을 보내 신민부 구성원들을 체포했다. 석두하자 한인 마을에서 이춘섭 등 10여 명의 대원들이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춘섭은 1929년 6월 1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8. 2. 4, 10. 30, 1929. 6. 9)
- 매일신보(每日申報)(1928. 4. 6, 1929. 5. 27, 6. 8, 6. 29)
- 조선일보(朝鮮日報)(1928. 10. 23, 10. 24, 1929. 2. 12, 6. 14)
- 신한민보(新韓民報)(1929. 7. 11)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만주지역 본방인재류금지관계잡건(국가보훈처, 2009) 제14권 203~2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