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강원도 회양(淮陽) 사람이다.
1930년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중국 상해로 망명한 후 1937년 7월 1일 중국 광동(廣東)에 있는 국립중산대학(國立中山大學) 법학원(法學院)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38년 나월환(羅月煥)·안춘생(安椿生) 등 200여명과 함께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 : 광복군 제2지대 전신)를 조편하여 한구(漢口)·무창(武昌)·대전·장사(長沙) 전투에 참전하였으며, 1940년 임시정부가 중경(重慶)으로 이동하자 후방공작을 담당하면서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장사 마원령에서 40여명의 한국 청년들과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쓴 '국경의 밤'·'상병의 벗'·'전야' 등 항일극을 야전병원과 군부대에서 공연하여 사기를 붇독우는 문화선전 활동을 주도하였다.
1942년 4월 1일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2지대 개편시 정훈조장(政訓組長)으로 활동하다가 동년 10월 27일 안 훈(安勳)이 정훈조장이 되고 그와 함께 조원으로 활동하였다.
항일전이 장기화되자 정규 군사교육을 이수하여야 되겠다는 절실한 필요에 따라 1940년 성도(成都)의 중국육군군관학교 제18기생으로 입교하여 1943년 1월 제1총대 통신병과(通信兵科)를 졸업하고 장교로서 군사전문지식을 갖추었다.
1943년 8월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제3차 전당대회에 참가하여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 겸 선전부 주임(宣傳部主任)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4년 6월 19일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구 확대강화에 따라 문화부 편집위원과 선전부 편집위원으로 동년 8월 21일까지 활동하였다.
그후 1944년 이범석(李範奭)이 이끄는 한국광복군 제2지대의 정훈조장으로 활약하면서 미국정보처(O.S.S) 두곡지대(杜曲支隊)에서 교육훈련을 받았으며 국내정진군(國內挺進軍) 황해도(黃海道) 지방반장으로 임명되어 국내진공을 준비하고 있던 중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6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명에 의하여 광복군을 인솔하고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13권 93·267·483·613·696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781·859면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제1권 320면
- 자료한국독립운동(추헌수) 제4권 (하) 391면
- 필업증서(1943. 1. 1 중국육군군관학교장 장중정(蔣中正))
- 중국군군관학교 동학록(1949. 7월) 169면
- 한민족 광복투쟁사(이현희) 288∼310·315·32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6권 283·406·491·495·501·510면
- 필업증서(1937. 7. 1 국립중산대학교장 추노(鄒魯))
- 한국광복군(이현희) 120∼12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946·1023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5권 8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