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북 경성(鏡城) 사람이다.
일찍이 만주로 이주하여 연길현(延吉縣) 지인사(志仁社) 의란구(依蘭溝) 위자구(葦子溝)에 거주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7월 간도(間島)와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지역에서 이범윤(李範允)계 의병 및 국민의회파를 중심으로 창의단(倡義團)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하였는데, 간도내에만 단원이 1,00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동년 11월에는 무산(茂山) 간도지역을 다니며, 군자금 3,150원을 모집하는 한편, 각 사(社)에 사무장을 임명하여 활동하도록 하였다.
한편 이범모는 의군단(義軍團)에서 서지방부장(西地方部長)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한 의군단은 3·1운동 후 북간도(北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통칭 의군부(義軍府) 또는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라고도 하였다. 처음 근거지는 왕청현(汪淸縣) 초모정자(草帽頂子)였으나 봉오동(鳳梧洞) 전투 이후 왕청현 명월구(明月溝)로 이전하였다. 의군단의 주요 간부는 본부의 경우 총재 이범윤, 총사령 김현규(金鉉圭), 참모장 진학신(秦學新), 총무부장 최우익(崔友翼), 군사부장 김청봉(金淸鳳), 외교부장 신립(申立), 통신부장 지우강(池雨江) 등이며, 중부(中部)의 경우는 참모장 고평(高平), 서무부장 이을(李乙), 재무부장 김종헌(金鍾憲), 외교부장 김종환(金鍾煥), 통신부장 박재(朴在), 군법원장 허승완(許承完), 헌병대장 최상운(崔尙雲), 군의감독(軍醫監督) 강문주(姜文周) 등이었다. 1921년 5월 상순 연길현(延吉縣) 수신향(守信鄕) 사도구(四道溝) 오지에서 이범모는 동지 32명과 함께 장총 30여 정을 발굴하여 안도현(安圖縣)에 있는 독립운동단체에 인계하였다.
이처럼 만주와 러시아 지역에서 활발히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이범모는 1922년 간도 삼도구(三道溝)에서 일경에게 붙잡혀 간도 일본영사관에서 오랫동안 고문을 당하다가 "내 적수에 피금(被擒)되어 구차한 명(命)을 지지(持支) 하느니 사(死)하니만 못하다"하고 1924년경 옥중에서 자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376·396·450면
- 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其一)(국회도서관) 제3집 519·656면
- 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其二)(국회도서관) 522·55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743면
- 독립신문(1924.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