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유찬희는 1915년 9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에서 권사용(權思容)이 설립한 학교에 재직하면서 국치기념일(國恥記念日)을 당해 국자가 지역의 기독교 교회에서 30여 명의 동지들과 기념식을 거행하며, 서로 고국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취지의 연설을 하는 등 항일정신을 고취하였다.
1919년 2월에는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체로서 대한독립기성총회(大韓獨立期成總會)를 결성하고 재무부장(財務部長)으로 활동하였다. 동년(同年) 노령(露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상무총회(韓人商務總會) 부의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20년 6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총기 구입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동년 8월 중국 연길현에서 대한국민회 참모장(參謀長)이 되었고 12월 이후 동회(同會) 재무부장(財務部長)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는 북간도지역에서 가장 잘 정비된 독립군단체로 본부는 연길현 춘화향(春化鄕)에 있었으며, 회장은 구춘선(具春善)이었다. 1920년경 국민회는 의란구(依蘭溝)에도 총부를 두었으며, 총 8개의 지방회와 130개가 넘는 지회를 설치하고 한인사회의 자치와 독립군 활동 및 군자금 모집 등에 주력하였다. 회원의 대부분은 기독교 신자였으나 후에 불교, 천도교, 공교회(孔敎會) 계통의 인물도 가담하였다. 대한국민회는 산하의 무장부대로 대한국민군(大韓國民軍)을 조직하고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유찬희는 1921년 연길현 액목현(額穆縣)에 거주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소식을 전달하고 배일청년단으로 활동하는 등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동년(同年) 12월 이후 길림성 돈화현(敦化縣)에서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중앙총회 참사(參事)가 되었으며, 1923년 12월 동지(同地)에서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설립된 동성노농공사(東省老農公司)의 간사(幹事)로 활동하였다. 1924년 국민위원회 국민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6년 노령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3.1운동 8주년 기념강연회를 주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不逞鮮人의 行動에 관한 건( 機密 제275호, 1923. 12. 1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7)
- 浦潮에서의 3월 1일 상황에 관한 보고(機密 제257호, 1926. 3. 1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16)
- 大正十年一月中에 間島地方 情況 槪要(秘受2095호-機密제81호, 1921. 2. 1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6권 1100면, 제9권 831면, 제10권 153면, 373면, 318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6) 제2권 796면, 제2권 776면, 제3권 170면
- 韓國民族運動史料(中國篇)(國會圖書館, 1976) 396면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자료: 중국편(5)(1921. 3. 31)
- 先父 柳纘熙의 前略(자 유수인:1980. 8)
- 對日支交涉 不逞鮮人 會議의 건(朝憲機 제120호, 1915. 4. 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4)
- 講和會議와 조선독립운동에 관한 건(朝憲機 제72호, 1919. 2. 1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7)
- 排日鮮人 獨立示威運動에 관한 건(機密 제17호, 1919. 3. 28)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9)
- 獨立運動에 관한 건(國外 제27보):圖們江方面, 鴨綠江方面(朝憲機第180號, 1919. 4. 10),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7)
- 朝鮮獨立運動에 관한 情報送付의 건(機密公信 제21호, 1919. 6. 1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1)
- 國外情報-國民會와 다른 단체와의 確執에 관한 건(高警 제16314호, 1920. 6.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8)
- 大韓國民會의 각 機關紙 및 役員(機密 제359호, 1920. 12. 2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5)
- 間島地方 警察機關의 보고에 관한 건(秘受1047호-機密제20호, 1921. 1. 2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5)
- 上海特使의 密行( 秘受3059호-機密제115호, 1921. 3.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7)
- 國民委員會公報 入手에 관한 건(機密 제159호, 1924. 9.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上海假政府(5)
- 講和會議에 즈음한 朝鮮人의 盲動에 관한 건(機密 제9호, 1919. 2. 2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8)
- 1921年 1月 中에 間島地方 情況 槪要(秘受2095호-機密제81호, 1921. 2. 1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6)
- 朝鮮예수敎長老會史記(1926) 上 325면
- 危險思想抱持者의 行動에 관한 報告의 건( 政機密 제2호, 1915. 9. 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5)
- 排日鮮人 等 國權恢復秘密運動에 관한 風說報告의 건(機密 제12호, 1919. 2. 2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8)
- 朝鮮獨立運動 情報 送付의 건(機密公信 제7호, 1919. 4. 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9)
- 獨立運動에 관한 건(國外 제44報)(騷蜜 제672호, 1919. 4. 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9)
- 재블라디보스토크 不逞鮮人의 활동상황 보고의 건(機密公信 제30호, 1919. 9.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8)
- 鮮人의 행동에 관한 건(機密 제9호, 1920. 1. 2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9)
- 間情 제65, 66호 送付(機密 제309호, 1920. 11. 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3)
- 排日鮮人動靜에 관한 건(秘受1238호-機密제33호, 1921. 1. 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5)
- 上海臨時政府의 軍資 借款 등에 관한 보고, (秘受1722호-機密제56호, 1921. 2. 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6)
- 1921년 間島地方 정황(末松吉次:1921. 2.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6)
- 國境警備에 관한 所見(秘受12316호, 1921. 10. 2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0)
- 주된 不逞鮮人에 관한 조사보고 건(機密 53호, 1921. 12. 1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13)
- 敦化縣地方 不逞鮮人의 共産黨機關 組織에 관한 件(機密 제520호, 1921. 12. 1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2
- 露領 및 間島 接壤地方에서의 不逞鮮人團의 情況에 관한 件(機密 제16호, 1922. 1. 1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2
- 間島 및 同 接壤地方에 있어서 排日團體 및 親日團體 調査의 건(機密受제110호-機密제93호, 1922. 2. 2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 滿洲의 部(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