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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716
성명
한자 金相奐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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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1. 1926년 11월 광주학생 중심으로 한국독립 및 사회과학연구를 위하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에 참가 하였다가 1927년 동회를 형식상 해산하고

2. 1929년 6월 「광주학생독서회(光州學生讀書會)」를 조직하여 주도하였음(동아일보 1930. 10. 10)

3.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사건이 발생되자 광주고보 선두에서 시위활약(항일운동사 p112)

하다가 체포되여 금고 4월형을 받음(판결등본제출)

4. 1930년 복역 중 「광주학생독서회(光州學生讀書會)」사건의 발각으로 동회를 주도하였다하여 최고형인 4년

형을 받았음(판결등본, 동아일보 1930. 10. 1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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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남 광양(光陽) 사람이다.

1926년 11월 3일 왕재일(王在一)·장재성(張載性) 등이 중심되어 조국의 독립과 사회과학연구를 목적으로 항일학생결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한 후 광주학생들은 항일의식이 고조되고 있었는데, 그는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중 그 주동 학생으로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1928년 10월 김보섭(金普燮)과 함께 당시 광주읍내에 있던 김시성(金時成)의 하숙집에서 김몽길(金夢吉)·여도현(呂道鉉) 등과 만나 항일운동 방안에 관하여 의논하였다. 그후 이들은 회합을 통해 항일정신을 고취하면서 동지 규합에 힘써 1929년 6월경에는 회원이 20여명에 달하였다.

이 무렵 동경(東京)에서 돌아온 장재성이, 성진회 해체 이후 분산적인 활동을 지양하고 조직적으로 활동할 것을 주장하여, 광주시내 각학교 학생지도자들은 김기권(金基權)의 하숙방에 모여 비밀결사 〈독서회중앙본부〉를 조직하였다. 이때 부서도 정하였는데 그는 김보섭과 함께 조사선전부원으로 선임되어 동지의 모집 및 선전 활동의 일을 맡았다.

한편 〈독서회중앙본부〉는 독서회원의 목적 수행을 위한 재정활동으로 소비조합 설치를 계획하는데 그는 장재성 등과 독서회중앙본부의 임원들과 수차에 걸쳐 모임을 갖고 의논하여 동년 9월에 소비조합을 설치하였다.

이에 앞서 동년 6월에는 광주고보생 20여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독서회중앙본부〉의 하부조직으로 광주고보독서회를 조직하였으며, 그는 동회의 대표 겸 조직교양부위원으로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이렇게 항일의식을 고취하며 활동하다가 1929년 11월 3일의 광주학생독립운동 때에는 학생들을 지휘하여 농구실(農具室)을 때려부수고 삽·괭이·목봉 등을 꺼내어 광주고보 가두시위대열의 선두에 서서 활약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경에 붙잡힌 그는 금고 6월,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 받았다.

또한 광주학생 독서회 관련에 대해서는 다시 주동자로 지목되어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피검된 학생 중 최고형인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30. 2. 26 광주지방법원)
  • 판결문(1930. 5. 15 대구복심법원)
  • 판결문(1930. 10. 18 광주지방법원)
  • 기려수필 397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 동아일보(1930. 10. 10, 10. 11, 10. 19)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2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59·494·598면
  •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17·72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40·247·251·263·1512∼1524·1611∼1624·1633∼1654·1667∼1708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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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상환 - 전라남도 광양(光陽) 성진회, 광주학생운동
본문
1909년 3월 28일 전라남도 광양군(光陽郡) 골약면(骨若面) 태인리(太仁里)에서 태어났다. 1926년 11월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농업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항일 학생 비밀결사 조직인 성진회에서 활동하였다. 조국의 독립과 사회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성진회는 1927년 3월 형식상 해산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매월 1, 2회씩 회합하여 사회과학 이론을 공부하였다. 1928년 광주고보 4학년에 재학 중, 동년 10월 하순 당시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한 김시성(金時成)의 하숙집에서 김시성·김보섭(金普燮)·김몽길(金夢吉)·여도현(呂道鉉) 등과 함께 사회과학 이론을 연구하고 실행에 관해 모색하였다. 1929년 6월 장재성 등은 성진회의 취지를 계승한 독서회중앙본부를 결성될 때 독서회대표 겸 조직교양부 위원에 선임되었다. 같은 해 9월 독서회중앙본부는 조직을 다시 정돈하고자 일시 해산하였다. 11월 3일 광주에서 학생 시위가 일어나자 광주고보 독서회원들을 중심으로 시가행진을 추진하였다. 이때 독서회원들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학생들을 이끌며 광주 시내를 시위행진하였다. 시위대는 경찰과 소방대의 저지를 뚫고 교가와 운동가를 부르며 시내 중심지를 시위행진한 후 귀교하였다. 11월 12일 2차 시위운동 때도 독서회중앙본부 회원들과 함께 주도적으로 활약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30년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시위운동 관련으로 금고 6개월,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옥살이하던 중 광주학생독서회 사건이 발각되었고 주동자로 지목되어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체포된 학생 중 최고형인 징역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였고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 금고 6월 집행유예 5년 대구복심법원형사부 1930-05-15 국가기록원
2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광주지법 공판에 부침 광주지방법원 1930-07-17 국가기록원
3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징역 4년 미결구류일수 70일 본형에 산입 광주지방법원형사부 1930-10-18 국가기록원
4 판결문 치안유지법위반 징역 2년 미결구류일수 중365일본형에산입 대구복심법원형사제1부 1931-06-13 국가기록원
5 판결문 보안법위반 집행유예 언도취소 광주지방법원 1931-08-11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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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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