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평안남도(平安南道) 대동군(大同郡) 고평면(古平面) 남리(南里) 출신이며, 독립운동 당시에는 안도현(安圖縣) 가대서리(街大西里)에 거주하였다. 1930년 8월 장백현(長白縣)에서 최병일(崔秉一)의 권유로 국민부(國民府)에 가담하였으며, 국민부의 군사조직인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최효일(崔孝一) 등 2명과 함께 각각 권총 1정과 탄환 200여 발 및 약간의 여비를 소지하고 압록강을 건너 함경남도(咸鏡南道)에 들어와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동월(同月) 12일 풍산군(豊山郡)의 중리주재소(中里駐在所)를 습격하는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도순사부장(道巡査部長)를 처단하였고 다른 순사에게 총상을 입혔다.
이로 인해 김형건은 동년(同年) 9월 체포(逮捕)되었으며, 경성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등의 위반으로 징역(懲役) 15년을 받았다. 경성형무소(京城刑務所)에서 복역(服役)하던 중 1934년 5월 5일 옥중(獄中) 순국(殉國)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2. 3. 8)
- 朝鮮日報(1932. 3. 8)
- 중앙일보(1932. 3. 8)
- 朴且石 假出獄關係書類(平壤刑務所:1937. 11. 24)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32. 4. 4)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